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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쟁, 고무산업의 발전을 이끌다

기동화력4팀 고동현 연구원

고무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소재이다. 고무줄, 신발 그리고 자동차의 타이어까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으며, 군이 운용하는 무기체계에도 다방면으로 응용되고 있어 방위산업에서도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고무 인간의 팔과 다리가 늘어나듯, 고무는 엄청난 유연성과 탄성을 자랑한다. 또한, 여러 재료와 배합하여 다양한 성질을 가진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고무의 성질은 현대사회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우리 삶에 중요한 존재인 고무의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본 기고에서는 전쟁이 가져온 고무산업의 발전을 알아보고, 최신 기술 동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콜럼버스, 천연고무를 유럽에 알리다

인류가 고무를 가공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500여 년에 불과하다. 천연고무는 14세기 말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제2차 원정을 할 때 아이티섬의 원주민들이 가지고 놀던 고무공을 유럽에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천연고무는 결점이 너무 커 활용도가 거의 없었고, 귀중품에 불과하였다.

18세기 말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틸리가 고무를 문질러(Rub) 연필로 쓴 글씨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후 고무를 “Rubber”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이후 고무의 활용도가 증가하자 영국은 고무 종자를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이식하였고, 이를 계기로 현재 동남아시아는 고무의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

그림 1. 콜럼버스(좌) 및 천연고무 유액(우)
그림 2. 동남아시아의 고무 농장

굿이어, 우연히 가황고무를 개발하다

초기의 천연고무는 온도가 높으면 늘어나 끊어지고, 온도가 낮으면 굳어 부서지는 등 온도변화에 매우 민감해 산업용으로 사용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19세기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는 고무의 탄성과 내구성을 높이는 실험 중 우연히 유황을 첨가한 천연고무를 난로 위에 떨어뜨렸다가 이전보다 튼튼하고 질긴 고무를 개발하였다. 이는 현재 가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찰스 굿이어의 가황고무 개발로 고무산업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합성고무의 탄생

제1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독일은 모든 군사 작전들을 꼼꼼히 확인했으나,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전쟁에서 고무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당시 천연고무는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하지만 영국이 대부분의 고무 농장을 소유하고 있어 독일의 고무 수입을 통제하였고, 해상을 봉쇄해 해당 지역에 접근하는 것조차 막았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독일은 타이어, 구명정, 방독면 등의 군수물자를 제조할 고무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대체소재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최초의 합성고무인 메틸 고무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메틸 고무는 산소에 노출되면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고, 독일의 패전과 함께 결국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림 3.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착용한 방독면

제2차 세계대전, 합성고무의 발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고무는 교전이 벌어지는 모든 곳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주요 전략물자 중 하나였다. 전투라는 특수환경에 맞춰 준비한 군수물자에 모두 고무가 사용되었고, 이는 고무산업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고무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생산량이 한정된 고무나무 진액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부족하였고, 강대국들은 합성고무 개발에 뛰어들었다.

합성고무의 선두자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독일이었다. 독일은 메틸 고무보다 나은 합성고무를 만들기 위한 실험을 지속하였고, 부나-S 고무(SBR), 부나-N 고무(NBR)를 개발하였다.

미국은 당시 세계 고무 소비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고무 소비량이 많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고무 수급이 어려워지자 산업에 타격을 입게 된다.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을 식민통치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고무나무 진액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고무의 민간 사용을 제한하기도 했으나, 막대한 고무 소비량을 충당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장악하면서 고무나무 진액의 수급에 더욱 차질이 생겼다.

그림 4. 미국의 고무 모으기 운동 포스터

이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합성고무 개발을 위해 고무비축공사를 설립하였고, 경쟁 관계에 있던 굿리치, 굿이어, 유에스고무공업 등의 회사들은 기술 정보를 협력하여 네오프렌 고무(CR)를 개발하였다.
이후 석유화학공업의 발달과 함께 값싼 원료를 다량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고무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실리콘 고무, 불소 고무, 우레탄 고무 등 우수한 성질의 합성고무 제품들이 만들어졌다.

그림 5. 굿리치 공장에서 생산 중인 합성고무

최신 고무산업 기술 동향

나노 입자를 더한 전도성 고무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연구단은 고무에 금-은 나노선을 첨가해 전기가 통하는 고무를 개발했다. 해당 전도성 고무는 최대 8.4배까지 늘어나는 변형에도 안정적으로 전기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생체 친화적이어서 향후 바이오메디컬디바이스와 웨어러블 분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6. 금-은 나노복합체 전도성 고무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3D 프린터를 활용한 고무제품 제작

최근 3D 프린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소재로 원하는 모양의 완제품을 출력할 수 있게 되었다. 고무를 활용한 3D 프린팅 기술 또한 연구되고 있으나, 액체 상태의 고무를 정확하게 제어하여 원하는 형태로 출력해야 하므로 소재의 유동성, 정확한 출력 등의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기술의 혁신을 통해 고무 3D 프린팅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수요가 적거나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 7. 3D 프린팅을 활용한 고무제품 제작
(출처 : Apple Rubber Products)

전쟁은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고 인류의 발전을 퇴보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떠한 측면에서는 인류의 발전을 앞당긴 촉매제가 되었다. 전쟁에서 고무는 중요한 전략물자였고, 고무 부족에 대처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노력이 고무산업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산업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소재의 고무가 개발되었으며, 현재 다양한 기술에 응용되어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노복합체 전도성 고무, 고무 3D 프린팅 기술 등이 개발되었다. 방위산업에서도 이러한 최신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적용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면 향후 무기체계 및 전력지원체계의 소형화·경량화뿐만 아니라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