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를 입은 스파이가 어두운 복도를 걷는다. 문을 열자 경비원이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권총을 꺼내 겨눈다. 총구 끝에 매달린 길쭉한 관 하나. 방아쇠를 당기자 "픽" 하는 짧고 낮은 소리만 나고, 적은 소리 없이 쓰러진다. 옆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007> 시리즈부터 미션임파서블, 존윅 등 수많은 첩보·액션 영화에서, 우리는 이런 장면을 수십 번 봐왔다. 소음기(Suppressor)를 낀 총은 "완전히 조용한 무기"라는 이미지가 대중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이유다.
하지만 실제로 저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옆방은 물론 건물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이 놀라 뛰쳐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소음기는 소리를 지우는 마법의 관이 아니라, 화약이 폭발하며 만들어낸 고온·고압 가스를 여러 겹의 격벽(Baffle) 속에서 서서히 감압시키는 정교한 기계 부품일 뿐이다.
1) 실제 사격 시 소음 레벨 SPL(Sound Pressure Level) [dB]
그림1.
2) 소음기 장착 후 실제 사격 시 소음 레벨 SPL(Sound Pressure Level) [dB] 실측 자료들을 사격 데이터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소음기 장착 후 실제 사격 시 소음 레벨 SPL(Sound Pressure Level) [dB] 실측 자료
| K14 |
With suppressor |
With out suppressor |
| 1 |
92.4 |
105.4 |
| 2 |
89.4 |
105.2 |
| 3 |
89.1 |
106 |
| 4 |
88.8 |
104.7 |
| 5 |
90.5 |
106 |
| 6 |
89.8 |
103.8 |
| 7 |
89.3 |
104.7 |
| 8 |
88.9 |
105.8 |
| 9 |
90.5 |
105.4 |
| 10 |
90 |
106 |
| Ave. |
89.9 |
105.3 |
그림2.
소음기는 청각적으로 소리 크기를 줄이는 효과를 주지만, 사격 소음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K7, 소음기관단총, 122dB) ,(K14, 소음기 장착 저격총, 105dB) 영화 속 소리처럼 극단적으로 조용하진 않다.
참고로 130dB은 여전히 청력에 즉각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귀에 거슬리지 않는 조용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처럼 옆방에서 못 알아챌 정도가 되려면 대화 수준인 60dB대까지 떨어져야 하는데, 이건 현실의 소음기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음원에 따른 소음레벨
| 소음원 |
소음 레벨 (dB) |
| 일반대화 |
60 |
| 도로교통 소음 |
70~85 |
| 오토바이 |
95~100 |
| 통증 유발기준 |
120~140 |
총기소음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데 한계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탄환이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1)초음속 충격파(Sonic Boom)때문이다.
일반적으로 9mm 권총탄이나 5.56mm 소총탄은 음속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따라서 아무리 완벽한 소음기를 장착하거나 다른 물리적인 조치를 취하더라도, 이 충격파 자체를 없앨 수 없으므로 특정 dB 이하로 소음을 줄이긴 어렵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소음기를 다는 걸까?
어차피 저렇게 시끄러운데, 굳이 소음기를 다는 이유가 뭘까?
답은 데시벨[dB]이 우리에게 익숙한 산술 눈금이 아니라 로그(Log) 눈금이라는 데 있다. 10dB이 줄어들 때마다 사람이 체감하는 소리 크기는 절반으로, 실제 음향 에너지는 10분의 1로 떨어진다. 170dB에서 140dB로 30dB이 줄었다면, 체감상 소리는 8분의 1 수준으로 작아지고 에너지는 1,000분의 1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여전히 시끄럽다"와 "차이가 없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이 차이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청력 손상 여부를 가른다. 순간 충격음이 140dB을 넘으면 단 한 발만으로도 영구적인 청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140dB 안팎의 총성은 이 위험선을 훌쩍 넘지만, 소음기를 거친 총성은 이 경계 언저리이거나 그 아래로 떨어진다. 특히 실내나 밀폐 공간처럼 소리가 벽에 반사돼 증폭되는 환경에서는, 함께 있는 사람들의 청력을 지키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실질적인 차이가 된다.
둘째, 소리의 방향성이 흐트러진다. 소음기가 없을 때는 날카롭고 짧은 파열음이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퍼지지만, 소음기를 거치면 저음역대의 뭉툭한 소리로 바뀌면서 어느 방향에서 소리가 났는지 특정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완전한 은신은 아니지만, 반응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소음기 없이 사격 소리
소음기 장착 후 사격 소리
그림3.
총성은 충격소음의 한 종류로, 저주파(63~250Hz)부터 고주파(4k~8kHz)까지 전 대역에 걸쳐 높은 에너지를 가진다.
소음기는 중간~고주파 대역(500Hz~4kHz)에서 감쇠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총구에서 발생하는 화약가스 팽창음(Muzzle Blast)의 급격한 압력 변화를 소음기 챔버가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저주파 대역(63~125Hz)은 상대적으로 감쇠량이 적은데, 탄두가 음속을 넘을 때 발생하는 초음속 충격파(sonic boom)는 소음기로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청각은 소리의 도달 시간차와 고주파 성분을 이용해 음원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소음기가 고주파 성분과 초기 충격파를 깎아내면 이 방향 판단의 단서 자체가 사라진다. 특히 원거리 저격처럼 거리가 있는 사격에서는 소리가 반사·굴절되며 도달하는 과정에서 저주파 위주의 둔탁한 소리만 남아, 순간적으로 "총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혼동을 주는 효과가 실전에서 보고된다.
영화에서 "다들 총소리를 못 알아챈다"는 설정이 아주 근거 없는 과장은 아닌 셈이다. 다만 이건 '안 들린다'가 아니라 '방향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쪽에 가깝다.
셋째, 총구 화염과 반동이 함께 줄어든다. 소음기는 가스를 단계적으로 감압시키는 구조라 총구 화염(Muzzle Flash)의 크기도 함께 억제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이 화염이야말로 적에게 위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신호다. 어두운 곳에서 총구 화염이 크게 터지면, 어둠에 적응해 있던 사수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하며 일시적인 야맹이 온다. 소염기는 고압 가스를 여러 갈래의 슬릿으로 찢어 배출시켜 대기 중 산소와 빠르게 섞이게 함으로써 연소 온도와 화염의 크기를 낮추고, 그 결과 사수 자신의 시야를 지켜준다.
또한 소음기의 무게와 가스 배출 구조가 총구의 들림을 일부 상쇄해 연속 사격 시 명중률을 높이는 부수 효과도 있다.
정리하면, 소음기의 존재 이유는 "안 들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력을 보호하고, 적군으로 하여금 사격자의 위치 특정을 어렵게 하고, 사격 통제력을 높이는 데 있다.
Q1. 그래도 영화처럼 조용하게 쏘려면?
그렇다면 진짜로 영화에 가까운 정숙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소음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탄의 속도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아음속탄이 필요하다. 총성의 상당 부분은 사실 화약 폭발음이 아니라 탄이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소닉 붐(sonic boom)'에서 나온다. 일반 탄은 음속(초당 약 340m)보다 훨씬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소음기를 달아도 이 소닉 붐 자체는 줄일 수 없다. 그래서 영화 같은 정숙 사격을 구현하려면 탄속을 음속 이하로 낮춘 아음속탄(Subsonic Ammunition)을 사용한다. 이 경우 소음기와 결합하면 소닉 붐이 사라지고 화약 연소음만 남아, 체감 소음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다만 아음속탄은 에너지가 낮아 사거리와 살상력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Q2. 베개를 대고 쏘면 조용해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음기가 없을 때 급하게 베개를 총구에 대고 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베개 깃털이 흩날리는 연출인데, 실제로는 어떨까?
베개 같은 섬유 뭉치를 총구에 밀착시키면 물리적으로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1) 팽창 공간 확보: 총구를 빠져나온 고압 가스가 곧바로 대기 중으로 퍼지지 않고, 베개 속을 통과하며 부피가 큰 섬유층 사이에서 한 차례 팽창·분산된다.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면 파열음의 피크 강도가 다소 줄어든다.
2) 고주파 흡음: 솜이나 섬유는 본래 흡음재로 쓰일 만큼 고주파 대역의 음파 에너지를 어느 정도 흡수한다. 그래서 날카로운 '탕' 소리의 째지는 느낌이 줄고, 앞서 설명한 옥타브 밴드 논리와 비슷하게 저역 위주의 둔탁한 소리로 바뀐다.
하지만 실제로 쏴보면 결과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감쇠량 자체가 미미하다. 실측에 가까운 사례들을 보면 베개를 통한 감쇠는 잘해야 10dB 안팎에 그친다. 정식 소음기가 20dB 정도 줄이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애초에 160dB에 육박하는 총성이 130~150dB대로 내려가는 정도이니, 여전히 청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치이다.
앞서 설명했듯 총성의 큰 축을 차지하는 소닉 붐(탄이 음속을 돌파하며 내는 충격파)은 총구가 아니라 탄이 날아가는 경로 전체에서 발생한다. 총구에 아무리 두꺼운 섬유를 덧대도 이미 총열을 떠난 탄이 만드는 소닉 붐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베개는 소음기의 *내부구조처럼 '방해 구조를 통한 단계적 통한 가스 감속'을 흉내는 내지만, 정식 소음기가 갖춘 밀폐된 챔버 구조와 내열 설계가 없어 물리적으로 반쪽짜리 흉내에 그친다. 영화 속 "베개 소음기"는 '아예 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옆방은 커녕 옆집까지 다 들리는' 수준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소음기 내부구조 형태와 장·단점
1) 배플형 소음기
가스를 여러 개의 격벽으로 나뉜 챔버에 가두어 단계적으로 팽창시키며 압력과 속도를 낮추는 전통적인 소음기 구조
그림4.
2) Flow - through형 소음기
가스를 가둬두는 전통적인 ‘밀폐된 방(Baffle) 형태가 아닌 소음기 내부에서 가스의 유동을 만들어 소음에너지를 줄이는 소음기 구조
그림5.
결론
혹시라도 해외 사격장 같은 곳에서 영화처럼 소음기 달린 총 한번 쏴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폼 잡는다고 귀마개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절대 방아쇠를 당기시면 절대 안 됩니다. 소음기를 달았다고 해도 사격 순간 당신의 귓가에서 터지는 소리는 여전히 록 콘서트장 스피커 바로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은 130dB 수준입니다. 영화에서나 듣던 ’픽‘하는 멋진 소리를 기대하며 맨 귀로 쐈다가는, 그 순간 눈앞이 노랗게 변하며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인 청력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소음기는 당신의 총성을 은밀하게 지워주는 요술봉이 아닌 사수의 청력이 '완전히' 터지는 걸 '그나마'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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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음속 충격파(Sonic Boom)
- 물체가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공기 압축이 겹쳐지면서 발생하는 커다란 폭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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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블로우백(Sonic Boom)
- 배플 사이 공간에 가스가 정체되면서 발사 시 얼굴 쪽으로 가스가 역류하는 현상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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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Park, C.-B. Shim, and J. Hong, “A Experimental Comparison Analysis for the Characteristics of Impulse Noise Caused by Shooting of Small Arms,” Transactions of the Korean Society for Noise and Vibration Engineering, vol. 26, no. 5. The Korean Society for Noise and Vibration Engineering, pp. 578-583, 20-Oct-2016.
- Jung-uk Ha. (2024). Trends and Prospects in Technologies and Materials for Firearm Suppressors.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Mechanical and Aviation Technology, 26(4), 686-692.
- Sung Ho Hwang, & Jae Bum Park. (2013). Noise Exposure Assessment at Military Rifle Ranges in South Korea. Korean Industrial Hygiene Association Journal, 23(3), pp. 261-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