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사로잡는 빛깔, 여백을 채우는 향기,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맛. 꽃차는 한 번을 마시더라도 눈, 코, 입으로 세 번을 마시게 되는 차다. 부푼 꽃망울이 곧 터질 듯한 이른 봄, 네 명의 청춘이 꽃차의 매력을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다담(茶談) 속에는 어떤 즐거움이 피어날까?
* <감성콜라보>는 다른 부·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함께 문화 체험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코너입니다.
진주의 꽃차 체험 현장. 모던한 인테리어 곳곳에 자리 잡은 전통적인 감성이 돋보인다. 정갈하게 정리된 다구 옆으로 앙증맞은 화과자까지 놓여있으니 분위기 좋은 찻집에 온 듯하다.
이번 꽃차 체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발품질연구본부의 손동규(기동화력개발품질팀) 연구원, 채수환(표준화연구1팀) 연구원, 생산품질경영본부의 서민준(생산품질기획팀) 연구원, 이진원(항공1팀) 연구원이다. 넷은 본부와 부서는 다르지만 모두 꽃차를 처음접해본다는 공통점으로 한곳에 모였다.
최근 실내생활이 많아지자 일상의 생기를 불어넣는취미로 꽃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꽃차는 식용 꽃을 덖고, 식히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 만드는 대용 차로 심미성은 물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도 지녔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눠야 기쁨이 두 배가 되는 법. 꽃차 체험을 이끄는 이은정 원장은 가장 먼저 일일 제자들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찻잔을 데워 말갛게 우러난 차를 따른다.
“한 번 드셔보세요. 색깔이 예쁘죠? 맨드라미꽃으로 만든 차입니다.”
붉게 우러난 꽃차를 시음하자 자연스럽게 시작된 수업. 입안에 융단이 깔리며 부드럽게 목을 훑고 가는 달큼한 향이 일품이다. 투박한 맨드라미꽃의 새로운 발견이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항산화와 혈액순환에 좋다니 앞으로 맨드라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차 ‘다’자에 대화 ‘담’을 써서 ‘다담’이라고 하죠? 조상들은 이천 년 전부터 다담을 생활에서 즐겼습니다. 다담은 세대 간 소통의 부재를 깨트리기에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다담을 한 번 나눠보시죠?”
차에 담긴 중요한 가르침이 퍼지자 편안한 온기가 네사람을 감싼다. 다담의 출발은 참가자 중 가장 입사막내인 서민준 연구원이 맡았다. “선배님들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좋습니다”라고 감춰놓은 반가움을 드러낸다. 신입사원 교육 때 같은 숙소를 쓴 손동규 연구원과 채수환 연구원의 인연까지 더해지니, 반가움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찻잔을 비워나가는 만큼 서로의 간격을 향긋하게 좁혀나가는 네 사람이다.
시음으로 몸과 분위기를 데웠으니 꽃차를 즐기는 다른 방법, 제다*를 배워보자. 눈으로 먼저 마시는 꽃차는 꽃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한 채 덖어야 한다. 충분히 기다리고, 꾸준히 들여다보는 정성도 필요하다.
본디 차가 지니고 있는 수련의 영역인 셈.
형형색색의 팬지꽃 앞에 선 네 사람. 팬지는 온실재배로 사계절 만날 수 있다. 초심자에게 부담이 없고 존재감이 확실한 팬지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은정 원장의 설명. 청정지역에 자란 팬지의 밑동을 자르고, 전기 팬 위에 한 송이씩 곱게 놓은 후 덖는 작업이 시작된다. 덩달아 수강생들의 궁금증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말리는 것과 덖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죠?” 민군규격 표준화 업무를 맡고 있는 채수환 연구원이라면 ‘꽃차의 기준’에 대해 궁금할 만하다. 시중에 생화를 말려서 만든 꽃차도 있지만, 덖고, 식히는 작업을 거쳐야 정석이다. 식물은 약성과 독성을 모두 지니고 있기에 덖는 과정을 통해 약성은 올리고 독성을 배출하여 맛과 향기를 끌어 올려야 한다.
“온도에 따라 꽃차의 품질도 달라지나요?” 꽃 앞에서도 손동규 연구원의 개발품질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는다. 꽃의 특성에 따라 덖는 온도도 달라지는 것이 인지상정. 꽃잎이 얇은 팬지는 100도 이하에서 8~10번 정도 덖고 식히는 작업을 반복한다. 꽃송이를 올려둔 전기 팬의 불을 켜고 끄는 일이 단순해 보일지라도 국방기술과 품질을 책임지는 손길이 닿으니 차를 덖는 향기에 무게가 실린다.
이진원 연구원은 "집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 수 있나요?”라며 질문을 이어나간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인 KF-X 개발단계 품질관리에 참여하고 있어 설레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새롭게 배우는 취미도 살뜰히 챙기는 그녀다.
어느새 현장은 제다의 열기로 후끈하다. 완벽한 꽃차를 만들려면 저온에서 뚜껑을 덮고 향을 가두는 향 매김 과정이 필수다. 생화의 잔여 수분은 사라지고, 밀도 있는 향만 남게 된다. 향 매김이 진행되는 동안 서민준 연구원의 꽃차 예찬이 이어진다.
“꽃차는 보통 3~4번까지 우려서 먹을 수 있다고 하니 경제적이네요. 이제 인스턴트커피는 못 마시겠는데요?” 국방품질연구회에서 기록물과 학술대회 개최 업무를 담당하고 그는 앞으로 내부보고서를 살필 때마다 꽃차와 함께하겠노라 굳은 의지를 내보인다.
꽃잎 한 장이라도 바스러질까 완성된 팬지꽃차를 유리병에 담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나를 생각해주세요.’ 팬지의 꽃말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는 그들의 표정에서도 섬세한 마음이 드러난다.
채수환 연구원과 이진원 연구원은 “직접 만든 꽃차로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우려내고 싶다”는 마음을 같이 모았다.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는 서민준 연구원은 어린이집 실습 시절, 아이들과 나눈 추억에 빗대어 팬지꽃차를 만들었다고 특별한 소회를 밝힌다. 평소 맛보기 힘든 차를 대접하겠노라며 이은정 원장은 헤어짐을 앞두고 보이차를 다관에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한국 토종 박하랑 블렌딩 하면 정말 맛있어요. 단독으로 사용할 때보다 합이 좋은 것을 함께 우리면 차원이 다른 맛의 세계가 열린답니다.”
한 모금 넘길 때마다 서로 다른 풍미가 섞여 세상에 없던 맛이 탄생한다. 아껴둔 화과자까지 곁들이니 몸과 마음이 그윽해진다. 블렌딩이 가진 보합의 힘이다.
최근 개발품질연구본부와 생산품질경영본부로 업무조직을 재편한 국방기술품질원. 개발품질연구본부와 생산품질경영본부의 기분 좋은 블렌딩이야말로 국방기술품질원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네 사람이 두 본부의 대표로 모여 향긋한 동료애를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꽃이 가진 고유의 향을 응축시키는 작업은 웃음과 사연을 나눌 동료가 없었다면 고단했을지도 모른다. 찻잔을 드는 것마저 어색했던 처음과 달리 차의 매력을 알아챈 네 사람 손에는 꽃차를 담은 병이 소중히 들렸다. 꽃차 향기를 맡을 때면 오늘의 추억과 인연이 생각날 것이다. 향기가 피어나는 곳에는 짙은 추억이 있기 마련이니까.
꽃차는 상당히 좋은 취미인 것 같아요. 뭔가 옛날 귀족들이 즐겼을 만한 고급스러운 취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처럼 예쁜 꽃도 보고 다른 부서분들과 좋은 교류를 한 덕에 협력할 일이 있으면 더 쉽게,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다른 부서 동료들과 여유롭게 차 한잔하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다른 부서와 마주칠 일이 없거든요. 이렇게 동료들과 만나 꽃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많이 얻어가는 기분입니다.
꽃차 만드는 걸 처음 해봤는데 마음이 정화되네요. 무엇보다 오늘 선배님들께 귀여운(?) 눈도장을 찍은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업무 특성상 타부서에 협조를 요청할 일이 많거든요. 선배님들, 제가 전화드릴 때 “꽃차 같이 만든 서민준입니다~”라고 하면 반갑게 받아주세요!
체질적으로 카페인이 잘 받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차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 수업을 통해서 직접 꽃차를 만들어서 즐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타부서와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데 이렇게 꽃차 체험이 좋은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